밀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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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1948~91)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살아갈수록 지울 수 없는 얼굴들이 늘어간다. 사랑했거나 미워했거나 곁에 있거나 세상을 떠났거나.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는 무심한 당신, 그윽한 당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들. 사랑했던 사람은 여전히 그립고 미워했던 사람은 미운 정이 깊어 외따로운 마음을 흔들고 감싸며 함께 살아가는 얼굴들. <황병승·시인>